샤토뇌프 뒤 파프

프랑스 와인 역사에서 ‘샤토뇌프 뒤 파프(Châteauneuf-du-Pape)’는 단순한 생산지를 넘어, 하나의 상징이자 전통의 정수로 여겨집니다. 

이름에서 느껴지듯, 이 와인의 기원은 교황청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 교황의 땅, 와인의 씨앗을 뿌리다



14세기 초, 프랑스 국왕 필리프 4세는 당시 교황 보니파키우스 8세를 압박하여 교황청을 이탈리아 로마에서 프랑스 남부 아비뇽(Avignon)으로 강제 이전시켰습니다. 이는 무려 70년 동안 지속된 ‘아비뇽 유수’의 시작이었으며, 교황청의 새로운 거처 주변은 곧 성스러운 토지로서의 상징성을 갖게 됩니다.

이 시기, 보르도 출신의 클레망 5세 교황이 즉위하며 자신의 고향에서 길러진 와인에 대한 애정을 토양 위에 심기 시작합니다. 아비뇽 인근 지역, 오늘날 ‘샤또뇌프 뒤 파프’라 불리는 이곳에 대규모 포도원이 개간되었고, 이는 훗날 프랑스 최초의 원산지 통제 명칭(AOC, Appellation d'Origine Contrôlée) 제도의 시초가 됩니다.


  • 고유의 떼루아



샤토뇌프 뒤 파프는 남부 론 지역에 위치한 프랑스 최상급 AOC 중 하나로, 그 독특한 테루아는 이 지역의 와인을 특별하게 만듭니다. 이곳의 포도밭은 커다란 조약돌로 덮여 있어 낮 동안 받은 태양열을 밤까지 지속적으로 방출합니다. 이러한 자연의 ‘온돌’ 시스템은 만생종 포도들이 숙성에 필요한 열을 충분히 공급받을 수 있도록 돕습니다.

여기에 북쪽에서 불어오는 미스트랄(Mistral - 남프랑스에서 지중해 쪽으로 부는 차고 건조한 지방풍)은 과도한 열기와 습기를 날려 보내 병해를 줄이고 포도 품질을 높입니다. 하지만 그 강풍은 포도나무에 물리적 피해를 줄 수 있기에, 이 지역의 농가들은 포도나무를 낮게 트레이닝하는 방식으로 대응합니다.


  • GSM 블렌딩의 미학



샤토뇌프 뒤 파프의 전통적인 블렌딩 방식은 그르나슈(Grenache), 쉬라(Syrah), 무르베드르(Mourvedre), 즉 ‘GSM’ 3총사를 중심으로 이루어집니다. 이 세 품종의 조화는 남부 론의 와인 스타일을 대표하며, 각 품종이 가진 특징을 토대로 절묘히 공유합니다.

  • 그르나슈(Grenache)는 풍부한 과실미와 알코올, 따뜻한 느낌을 선사하지만 산미와 타닌이 부족합니다.
  • 쉬라(Syrah)는 강렬한 색과 스파이시한 산미를 제공하며, 구조를 단단히 잡아주는 역할을 합니다.
  • 무르베드르(Mourvedre)는 깊은 구조감과 숙성 잠재력을 갖추었지만 과도하게 무거울 수 있습니다.

이 세 가지 품종이 블렌딩 되면, 무게감과 산미, 과실미가 균형 잡힌 완성도 높은 와인이 탄생합니다. GSM 블렌딩은 각 품종의 결점을 서로 보완하며 최상의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는 방식으로, 곧 이 지역 와인의 정체성까지 훌륭히 보여줍니다.


  • 숨은 주역, 보조 품종의 활약



샤토뇌프 뒤 파프 AOC에서는 GSM 외에도 총 13~18개에 달하는 다양한 품종이 허용되며, 특히 그중 쌩소(Cinsault) 품종이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또한, 클레렛(Clairette), 후싼(Roussanne) 등 남부 론의 떼루아(Terroir)에 적합한 조건을 갖춘 백포도 품종은 뛰어난 품질의 화이트 와인으로써 그 두각을 발휘합니다.

클레렛은 아카시아, 복숭아, 회향 등 허브와 과일의 캐릭터를 부여하며, 낮은 산미와 높은 알코올을 갖는 반면 산화에 취약합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강한 산미와 숙성력을 가진 후싼과의 블렌딩이 이루어지며, 결과적으로 보다 긴 수명과 복합미를 갖춘 와인이 완성됩니다.


  • 결론: 시대를 초월한 위엄


샤또뇌프 뒤 파프는 단순한 와인 산지를 넘어, 교황의 정치적 유산과 자연의 역동성이 조화를 이루며 태어난 걸작입니다. GSM 블렌딩 이라는 전통적 양조 방식은 와인에 정체성과 일관성을 부여하며, 다양한 품종의 조화는 풍부한 향미와 숙성 잠재력을 보장합니다.

수 세기를 아우르며 많은 이들의 사랑을 듬뿍 받아오고 있는 이 와인은, 오늘날에도 전통과 혁신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며 전세계 와인시장의 찬사를 한 몸에 받고 있음과 아울러, 한 잔의 샤또뇌프 뒤 파프는 결코 단순한 와인이 아닌 중세부터 이어진 역사와 자연이 빚어낸 ‘성스러운 한 모금’ 이라 표현할 수 있습니다.

연관 와인 추천

연관 와인 추천 준비중입니다.